피해자 유족 이재웅 옹 지오학교 찾아 학생들에 감사 인사
"잊지 않고 생각해주는 학생들, 고맙다는 말 꼭 전하고 싶어."
3일 오후 12시 40분쯤, 전남 화순의 기숙형 중고등 대안학교인 지오학교에 구순을 바라보는 백발 노인이 찾아왔다. 광주 북구 동림동에 사는 이재웅 옹(89). 그는 택시를 두 번 갈아타고 지오학교를 찾았다고 했다. 한 손에는 지방신문에서 오린 기사 한 토막이 들려 있었다.
지오학교 학생들이 전남도교육청 후원으로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사이판과 티니안섬을 찾아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를 위로하는 추모음악회를 연다는 내용이다.
"자기 가족도 아닌데 그 먼 데까지 가서, 돌아가신 분들 위로해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워요. 고맙다는 말 한마디 꼭 해주고 싶어 왔어요."
이 옹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비공식 유족이다. 그는 너댓살 때 강제징용된 아버지와 헤어졌다.
어머니는 어릴 적 "일본에 돈 벌러 가셨다"고 했고, 해방 후에는 "오시다 물에 빠져 돌아가셨다"고 할 뿐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일체 얘기하지 않았다. 이 옹은 선친의 성함(호적상 이만조, 족보상 이만범)을 들고 관련 기관을 찾아다녔으나 일본측 강제징용자 명단에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.
잊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. 하지만 정년 퇴직 후 주름이 더 깊어갈수록, 선친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. 구청부터 정부 청사까지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았으나 못 찾는다는 답은 여전했다.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강제동원 관련 기사만 보면 스크랩하는 일이었다. 그러다 학생들 소식을 접했다. "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억울하게 많이 죽었는데, 잊지 않고 생각해주는 학생들이 있다는 게 너무 고맙고. 나만 유족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유족이구나하고 생각했어요."
학생들 손을 잡으며 눈시울 붉히던 이 옹은, 이들이 추모음악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.
추모음악회 준비팀장을 맡고 있는 박민서 군(17)은 "이렇게 어르신을 만나 직접 얘기해보니, 우리가 하는 일이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"고 말했다. nofatejb@news1.kr |